호이안 기념품샵에서 마주한 친숙한듯 가장 낯선 얼굴

― ‘로켓맨’ 티셔츠는 과연 누구를 위한 기념품일까요
베트남 중부의 작은 도시 호이안은 여행자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추는 곳입니다. 노란 벽과 초록 셔터, 해 질 무렵 하나둘 켜지는 형형색색의 랜턴, 그리고 골목마다 이어지는 기념품 가게들까지. 그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호이안다운데, 바로 그 ‘충분히 호이안다운’ 기념품샵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북한 김정은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티셔츠였습니다.
그 아래에는 다소 장난스럽게, 그러나 꽤나 당당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ROCKET MAN.”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혹은 비슷한 얼굴의 캐릭터는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얼굴이었고, 그것도 꽤 다양한 상품군으로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티셔츠는 기본이고, 양말, 열쇠고리, 에코백까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단발성 농담이 아니라, 제법 진지하게 기획된 ‘라인업’처럼 보였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기념품은 과연 누가 구매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인 관광객이 이 상품을 구매하는 장면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호이안에는 실제로 우리나라 여행객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족 단위 여행객, 신혼부부, 부모님을 모시고 온 효도 여행객까지 다양한데, 그분들께서 저 티셔츠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그리고는 웃음 반, 당황 반의 표정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시겠지요.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이 물건은 과연 누가 사는 걸까요?
멀면 웃을 수 있고, 가까우면 웃기 어렵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입니다. 이 상품의 주요 구매층은 아마도 서구권 여행객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 정치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뉴스와 다큐멘터리, 풍자 프로그램 속에서 반복 소비된 상징적 캐릭터에 가깝습니다. 핵, 미사일, 긴장이라는 무거운 맥락은 어느 정도 제거되고, 대신 ‘이상하고 독특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정치는 멀어질수록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상품이 됩니다.
호이안의 로켓맨 티셔츠는 바로 그 거리감 위에서 만들어진 기념품인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인에게 그 얼굴은 너무 가깝습니다. 웃자니 애매하고, 입고 다니자니 더욱 애매한 얼굴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구매 대신 사진을 선택합니다. 소유하지 않되, 이야기로만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여행지 기념품샵은 ‘외부의 시선 박물관’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행지의 기념품샵은 그 나라를 향한 외부의 시선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전쟁은 캐릭터가 되고, 정치인은 아이콘이 되며, 복잡한 역사는 한 장의 티셔츠로 요약됩니다. 의미는 가볍게 덜어내고, 재미만 남긴 결과물이 바로 기념품입니다.
호이안의 로켓맨 상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 그 얼굴은 비판의 대상도, 공포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저 “신기하고 웃긴 여행지 아이템”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현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장식품이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사지 않고, 기억합니다
결국 저는 그 티셔츠를 사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진 한 장을 찍고, 이 생각들을 마음속에 담아 왔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는 그게 가장 적절한 소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건은 남기지 않되, 경험과 이야기만 챙기는 것. 여행이 주는 가장 깔끔한 기념품은 언제나 이야기니까요.
호이안의 밤, 랜턴 불빛 아래에서 만난 뜻밖의 얼굴 하나.
그 얼굴 덕분에 저는 여행지에서 문화와 시선의 거리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언젠가 비슷한 기념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서시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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