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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좌초된 곳에 피어난 예술: 구엘 공원, 가우디의 유기적인 상상력과 빛나는 트렌카디스

ohara 2025. 10. 1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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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 (Park Güell) 에 다녀온 이야기를 밀도 있게 풀어낼까 합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느꼈던 자연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다시 한번 압도적으로 경험하게 해준 이 공원은, 가우디의 천재성과 인간의 끈기가 빚어낸 '실패한 꿈의 성공적인 변주곡'과 같았습니다.

 

 

유기적인 감동의 재현: '자연'을 스승으로 삼은 건축

구엘 공원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저는 마치 자연이 건축을 빚어낸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울퉁불퉁한 돌담, 나무줄기처럼 솟아오른 기둥, 그리고 물결치는 듯한 벤치 곡선까지, 그 어디에서도 직선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우디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구엘 공원은 그의 자연주의 건축 철학의 정수였습니다.

이러한 유기적인 느낌은 앞서 방문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즉 '돌로 만든 숲'의 기둥에서 느꼈던 신선한 감동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가우디는 자연의 구조와 형태를 건축에 그대로 차용하여, 인간이 자연의 품 안에 안겨있는 듯한 편안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페루의 공원? 가우디 건축의 선구적 영향력

여행자로서 흥미로웠던 점은, 구엘 공원의 일부 건축 요소나 계단식 구조가 페루리마의 사랑의 공원과 매우 유사한 인상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구엘 공원은 1900년대 초에 건설되었고,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건축적 유사성은 종종 '가우디의 선구자적인 디자인이 후대의 많은 공원과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습니다. 특히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통합하는 그의 방식은, 많은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하고 유기적인 건축의 이상향이 되었을 것입니다. 구엘 공원의 경이로움을 경험한 후대의 건축가들이 그 영감을 페루와 같은 다른 지역의 프로젝트에 녹여냈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습니다.


실패한 꿈, 성공적인 유산: 고급 주택단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구엘 공원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이곳이 주는 감동은 더욱 깊어집니다. 이 환상적인 공간은 원래 공공 공원이 아닌, 바르셀로나 상류층을 위한 초호화 주택 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 에우제비 구엘의 비전: 구엘 백작은 영국에서 유행하던 '전원 도시(Garden City)' 개념에 매료되어, 바르셀로나 교외의 쾌적한 언덕(당시에는 '민둥산'이라는 뜻의 Muntanya Pelada)에 부유층을 위한 60채 규모의 주택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가우디를 건축가로 고용했고, 공원의 이름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 '파크 구엘(Park Güell)'이라고 영어식으로 지었습니다.
  • 예상치 못한 실패: 그러나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상업적인 실패로 끝났습니다. 건설이 시작된 1900년부터 1914년까지, 60개 구획 중 단 두 채의 주택만 지어졌습니다. 한 채는 구엘 백작의 친구인 변호사 마르티 트리아스(Martí Trias i Domènech)의 집, 다른 한 채는 모델 하우스였는데, 가우디가 나중에 그의 아버지와 조카와 함께 이사하여 살게 됩니다.
  • 실패의 원인:
    1. 접근성 문제: 당시에는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언덕에 위치하여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2. 판매 조건의 복잡성: 토지 임대와 관련된 복잡한 법적 조건(emphyteutic contract)이 구매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3. 시대적 배경: 1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도 한몫했습니다.

결국 1914년에 공사는 중단되었고, 구엘 백작은 이 미완성된 공간을 사적인 정원으로 활용하며 때때로 공공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1918년 그가 사망한 후, 상속인들은 이 땅을 바르셀로나 시의회에 매각했고, 마침내 1926년 시립 공원으로 일반에 공개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이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트렌카디스와 도마뱀: 색채의 마술과 숨겨진 상징

 

구엘 공원을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단연 화려한 모자이크일 것입니다. 특히 입구 계단을 지키고 서 있는 용 또는 도마뱀 분수와 대형 광장(그리스 극장으로 기획됨)을 둘러싼 물결 모양의 긴 벤치는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입니다.

 

 

  • 트렌카디스(Trencadís) 기법: 가우디는 깨진 타일 조각을 재활용하여 모자이크를 만드는 트렌카디스 기법을 이곳에서 발전시키고 완성했습니다. 이는 환경 친화적인 재료 사용과 창조적인 재활용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보조 건축가인 주죨(Josep Maria Jujol)의 손길이 더해진 이 모자이크들은 태양 빛을 반사하며 생동감 넘치는 색채의 마법을 연출합니다.
  • 엘 드라크(El Drac)의 비밀: 공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다채로운 도마뱀 조형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이 도마뱀은 위쪽의 하이포스타일(Hypostyle) 룸에 모인 빗물을 지하 물탱크로 보내고, 물이 넘칠 경우 분수처럼 뿜어내는 배수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기능과 예술이 완벽하게 결합된 가우디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한글 번역본 책을 만나다: 가우디와 나누는 시간

기념품 가게에서는 이 모든 경이로움을 탄생시킨 가우디에 대한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글로 번역된 책을 발견했습니다. 외국 서점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만난 반가움에 주저 없이 한 권을 구매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우디가 이 공원을 설계할 때 품었던 고민과 철학, 그리고 건축에 대한 그의 헌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의 입장이 아닌, 건축가의 시선으로 구엘 공원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기념품이었습니다.


하이포스타일 룸과 비전의 완성

 

입구 중앙의 계단을 올라가면 만나는 하이포스타일 룸(Sala Hipóstila)은 원래 주택 단지 거주민들을 위한 시장(Marketplace)으로 설계되었습니다.

8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우뚝 솟아있는 이 공간은 마치 고대 신전 같으면서도, 기둥 위로 쏟아지는 빛과 천장의 컬러풀한 모자이크 장식 덕분에 매우 현대적이고 경쾌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 방이 실제로 주민들의 장터가 되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구엘 공원은 미완의 주택 단지로 남았지만,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 언어와 자연을 향한 경외심, 그리고 한 후원자의 꿈이 어우러져 시간을 초월한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건축물은 우리에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예술과 기능이 결합된 창조성, 그리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인간의 끈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모든 분들께,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의 숨결이 담긴 빛과 색, 그리고 곡선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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