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를 여행하다 보면 경이로운 안데스 산맥의 풍경 속에서 뜻밖의 광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푸른 산비탈에 희미하게 또는 선명하게 새겨진 거대한 글자나 숫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가, 왜, 어떻게 저런 거대한 메시지를 산에 새겨 넣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저 또한 이 '힐사이드 텍스트(Hillside Texts)'를 보며 궁금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혹시 위치 표시인가?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
정확한 정보와 함께 이 흥미로운 산비탈 글자의 비밀을 찾아보았습니다.
산자락에 새겨진 '정치적 메시지': 페루 선거 운동의 독특한 풍경
놀랍게도, 안데스 산비탈에 새겨진 이 거대한 글자들은 대부분 현대 페루의 선거 운동과 관련된 메시지라고합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나 지방 선거와 같은 주요 선거 기간이 되면, 후보자들이 자신들의 이름, 당명, 또는 선거 번호를 거대한 크기로 산비탈에 새겨 넣어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 어떻게 만들어질까?: 주로 돌을 치우거나 흙을 깎아내는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고, 때로는 하얀 페인트를 칠하거나 석회석을 사용해 더욱 선명하게 만듭니다. 밤에는 조명을 비추어 멀리서도 보이도록 하기도 합니다.
- 왜 산에 새길까?: 페루는 안데스 산맥으로 이루어진 지형이 많아, 넓은 평지가 부족하고 도로망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산은 어디서든 보이기 때문에, 가장 크고 시각적인 홍보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체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특정 후보나 정당이 자신들의 세력권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선거 운동은 페루의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방문객들에게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환경 훼손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합니다.
환경 논란 속의 '정치적 예술'
이 거대한 산비탈 글자들은 홍보 효과를 넘어 여러 논란을 야기합니다.
- 환경 파괴: 산비탈의 식생을 훼손하거나 흙을 깎아내고 인위적인 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연 경관을 해치고 토양 침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거가 끝나도 글자들이 오랫동안 남아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미관 저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정치적인 메시지로 뒤덮는 것이 도시 및 자연 미관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 불법성: 많은 경우 이러한 행위가 환경 보호법이나 미관 관련 법규를 위반하여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글자를 새기는 행위는 페루의 선거 문화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독특한 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광활한 자연과 인간의 정치적 욕망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어쩌면 페루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산의 메시지'
이러한 현대의 힐사이드 텍스트는 어쩌면 고대 잉카인들이 거대한 암석에 그림이나 조각을 새겨 넣었던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의도와 목적은 다르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메시지를 남긴다'는 행위 자체는 고대와 현대를 잇는 공통된 인간의 욕구일 수 있습니다.
잉카인들은 지형을 활용하여 테라스 경작지(모레이), 요새(삭사이와만), 도시(마추픽추) 등을 건설하며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했습니다. 현대 페루인들 역시 자연을 '메시지를 담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과거의 잉카인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에 반해, 현대의 정치적 메시지는 종종 자연 훼손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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