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모레이(Moray)'가 잉카인들의 경이로운 농업 기술을 보여주었다면, '살리네라스 데 마라스(Salineras de Maras)'는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또 다른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해발 3,000m가 넘는 안데스 산속에서 펼쳐진 하얀 계단식 염전 풍경은, 제가 가지고 있던 '소금'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렸습니다.
바다 없는 산속에서 소금이? 살리네라스의 놀라운 비밀!
'소금' 하면 우리는 으레 바닷가에서 넓게 펼쳐진 염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마라스의 살리네라스는 다릅니다. 이곳은 바다와는 까마득히 먼,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소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지하에서 솟아나는 염수(Saltwater Spring)'에 있습니다. 이곳 마라스 계곡 깊은 곳에는 수억 년 전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암염층이 존재하며, 이 암염층을 지하수가 통과하면서 염분을 가득 머금은 '염수 샘(Salty Spring)'이 솟아나옵니다. 이 염수는 약 3,000개에 달하는 작은 연못, 즉 염전 칸칸이 흘러 들어가 태양열과 바람에 의해 수분이 증발하면서 순수한 소금 결정을 남기는 방식으로 채취됩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소금은 당연히 바닷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제 고정관념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습니다. 히말라야 핑크 소금처럼 염석을 직접 캐는 방식이 아니라, 육지의 물을 활용하여 바닷물처럼 소금을 생산한다는 점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연이 베푼 선물과 잉카인들의 지혜가 결합된, 살아있는 자연 박물관과 같았습니다.
살리네라스 염전은 잉카 제국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스페인 식민 시대에도 계속해서 소금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염수가 솟아나는 샘은 'Qoripujio'라고 불리며, 이곳에서 염수를 각 염전으로 분배하는 정교한 수로 시스템은 고대 잉카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보여줍니다.
천 개의 퍼즐 조각: 각기 다른 주인을 가진 염전 칸칸이
살리네라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비탈을 따라 촘촘하게 펼쳐진 수천 개의 하얀 직사각형 연못들이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보였죠. 그런데 가이드의 또 다른 설명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수많은 염전 칸칸이 모두 다른 주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염전 구획은 가족 단위로 소유하며, 대대로 물려받는 중요한 재산이자 생계 수단이라고 합니다. 잉카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 각자가 자신의 염전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판매하며 살아갑니다. 소유주는 각자의 염수를 관리하고 소금을 거두는 방식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이는 지역 공동체의 독특한 경제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염전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좁은 흙길을 걸으며, 각 칸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땅이자,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일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이 공동체적인 소금 생산 방식은, 현대 사회의 소유 개념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의 소금은 단순한 미네랄이 아니라, 수많은 가족들의 삶과 역사가 응축된 결정체 같았습니다.
마라스 염전은 현재 약 400~500가구의 지역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잉카 시대부터 내려온 공동체 기반의 소금 채취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산된 소금은 주로 현지 시장에 판매되거나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립니다.
'천연 핑크 소금'의 고향: 마라스 소금의 특별함
살리네라스에서 채취되는 소금은 그저 일반적인 소금이 아닙니다. 이곳의 소금은 미네랄 함량이 풍부하고, 특히 붉은 빛을 띠는 '핑크 소금'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염수에 포함된 다양한 미네랄 성분과 미세조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저는 염전 입구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마라스 소금을 직접 맛보기도 했습니다. 일반 소금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이 소금은 요리용으로도 인기가 많지만, 피부 미용이나 목욕 소금으로도 활용된다고 합니다. 바다 소금과는 또 다른, 안데스 산맥의 정기가 담긴 특별한 소금인 것이죠.
염전 사이를 걷다: 시간과 자연의 예술 작품
살리네라스의 풍경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과 같았습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하얗게 빛나기도 하고, 분홍빛이나 황금빛으로 물들기도 하며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염전 사이를 걷는 동안, 저는 잉카인들이 이 경이로운 자연 현상을 어떻게 발견하고, 또 어떻게 인간의 삶에 활용했는지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오랜 세월 동안 염수를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소금을 얻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잉카 제국의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살리네라스는 단순한 소금 생산지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존중과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이 결합된,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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