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라는 이름표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 '시스제닉'
"GMO 작물, 과연 안전한 걸까?"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전자 변형 작물, 즉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전자 변형 작물이 '트랜스제닉(Transgenic)'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GMO라는 큰 이름표 뒤에 숨겨진, 훨씬 더 '친숙하고 자연적인' 개념의 유전공학 기술인 '시스제닉(Cisgenic)', 마치 오랜 육종을 한 세대 만에 압축시킨 듯한 이 놀라운 기술이 무엇이며, 왜 미래 농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시스제닉(Cisgenic)'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경계를 넘지 않는 유전 공학
시스제닉은 유전자 변형 기술의 한 종류이지만, 그 유전자원의 출처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둡니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유전자를 변형하되, 해당 생물 종 자체 또는 자연적으로 교배하여 얻을 수 있는 가까운 친척 종에서만 유전자를 가져와서 도입하는 기술.
즉, 시스제닉 작물은 자연적인 교배(전통 육종)로도 이론적으로는 만들 수 있는 유전적 조합을 가집니다. 단지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그 과정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이죠. 'Cis-'는 '동일한, 같은 쪽'을 의미하며, 이는 유전자원이 '동일한 종' 내에서 이동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시스제닉 vs 트랜스제닉(GMO): '출처'가 만드는 큰 차이
시스제닉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는 '트랜스제닉(Transgenic)' 방식과의 차이점입니다.
| 구분 | 시스제닉 (Cisgenic) | 트랜스제닉 (Transgenic) / 일반적인 GMO |
| 유전자원 출처 | 동일 종 또는 자연 교배 가능한 친척 종 (예: 사과 유전자를 다른 사과 품종에 삽입) |
다른 생물 종 (예: 박테리아 유전자를 옥수수에, 물고기 유전자를 딸기에 삽입) |
| 유전자 이동 | 자연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유전자 이동 (단, 유전공학으로 가속화) |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유전자 이동 |
| 도입 유전자 | 해당 생물 종의 유전자 및 그 조절 서열 (자연 상태와 유사) |
타 종의 유전자 및 특정 프로모터/마커 유전자 (외래 유전자 삽입) |
| 주요 목적 | 기존 품종의 단점 개선, 내재된 잠재력 활용 | 새로운 형질 도입, 없던 기능 부여 (예: 해충 저항성, 제초제 내성) |
| 사회적 인식 | GMO보다 안전하고 자연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함. 규제 완화 논의 활발 |
'낯선 유전자'에 대한 거부감. 엄격한 규제 적용 및 사회적 논쟁 심화 |
트랜스제닉이 '국경을 넘나드는 유전자 이동'이라면, 시스제닉은 '자연 교배라는 국경 안에서의 빠른 이동'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스제닉, 왜 미래 농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릴까?
시스제닉 기술은 인류가 직면한 식량 문제와 환경 문제 해결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 친환경 농업으로의 전환:
- 질병 저항성 강화: 감자의 '마름병', 사과의 '갈변' 등 특정 질병이나 문제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여 농약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농업 환경 보호와 소비자의 건강 증진에 기여합니다.
- 영양 성분 강화: 특정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부족한 작물에, 해당 작물의 친척 종에서 더 많은 영양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도입하여 영양 불균형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지속 가능한 품종 개량:
- 기존 품종의 우수성 유지: 맛, 향, 수확량 등 이미 뛰어난 기존 품종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하는 한두 가지 단점(예: 병충해 취약성)만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 시간과 비용 절감: 수십 년이 걸리는 전통 육종 과정을 단 몇 년으로 단축시켜, 급변하는 기후 변화와 병해충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합니다.
- 사회적 수용성 증대:
- 트랜스제닉 작물에 대한 불안감이 큰 유럽 등지에서도 시스제닉 작물에 대해서는 GMO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자연 교배로도 가능한 조합'이라는 점이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시스제닉 기술의 현재와 미래
전 세계적으로 시스제닉 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몇몇 작물은 상업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 유럽: 유럽 연합(EU)은 엄격한 GMO 규제로 유명하지만, 시스제닉과 같은 '새로운 육종 기술(New Genomic Techniques, NGTs)'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 대응과 식량 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 미국 및 기타 국가: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도 시스제닉 작물의 상업적 승인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질병 저항성 감자, 갈변 방지 사과 등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 일본: 일본도 NGTs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며, 시스제닉 기술이 가져올 농업 생산성 향상과 환경 부하 저감 효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현명한 선택
시스제닉 기술은 유전공학이 '낯선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혜'를 빌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질병 저항성 작물로 농약 사용을 줄이고, 영양분을 강화하여 굶주림을 해결하며, 기후 변화에 강한 품종으로 식량 안보를 지키는 것. 이 모든 것이 시스제닉이라는 '경계를 아는 과학'의 손끝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식탁 위의 먹거리에 대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시스제닉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