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사진첩을 펼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 같은 풍경이 있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풍차(Windmill)들과, 강변을 따라 늘어선 녹색 목조 가옥들. 바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야외 박물관,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입니다. 이곳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Dutch Golden Age)'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던 ‘최초의 산업지대’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살아있는 역사 현장입니다.
풍차, 공장, 그리고 산업 혁명의 시작

잔세스칸스가 위치한 잔스트레이크(Zaanstreek) 지역은 과거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산업 지역이었습니다. 1700년대 전성기에는 이 작은 지역에 무려 600개가 넘는 풍차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풍차는 곡식을 빻는 용도로만 쓰였지만, 이 지역의 풍차는 그야말로 ‘바람으로 움직이는 공장’이었습니다.
- 산업용 풍차: 이들은 밀가루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자르는 제재소(Sawmill), 기름을 짜는 착유소(Oil Mill), 페인트와 염료의 원료를 빻는 도료 제조소(Paint Mill), 그리고 심지어 겨자나 향신료를 빻는 일까지, 풍차는 당시 이 지역 경제의 모든 동력이었습니다.
- 크랭크축의 발명: 이러한 산업적 번영은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반 위트헤스트(Cornelis Corneliszoon van Uitgeest)가 1594년에 크랭크축(Crankshaft)을 발명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이 발명 덕분에 풍차 날개의 수평 운동 에너지를 톱질과 같은 수직 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고, 대규모 산업 생산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잔세스칸스의 풍차들은 1961년부터 1974년 사이에 보존을 위해 잔스트레이크 지역 전역에서 옮겨온 건축물들입니다.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당시의 산업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여전히 실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코코아 향이 나는 바람과 치즈의 유혹

잔세스칸스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코와 입이 즐거운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초콜릿 풍차의 비밀
잔세스칸스를 거닐다 보면, 간혹 달콤하고 쌉싸름한 코코아 향이 바람을 타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코코아 콩을 빻는 풍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19세기 후반, 풍차를 이용해 코코아 가루를 대량 생산하며 네덜란드의 초콜릿 및 비스킷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잔스 박물관(Zaans Museum) 내의 페르카데 체험(Verkade Experience)에서는 20세기 초의 초콜릿 및 비스킷 공장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으며, 실제로 초콜릿 향이 나는 초콜릿 바를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 달콤한 향기는 잔세스칸스가 얼마나 다양한 산업의 중심지였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재미있는 증거입니다.
치즈 농장과 나막신 공방

잔세스칸스의 상징적인 체험 중 하나는 치즈 농장(Cheese Farm) 방문입니다.

- 치즈 체험: 카타리나 호베(Catharina Hoeve)**와 같은 전통 치즈 농장에서는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들이 $\text{18}$세기 방식으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해줍니다. 시식 코너에서는 고다(Gouda), 염소 치즈(Goat Cheese), 그리고 다양한 허브 치즈까지, 맛있는 네덜란드 치즈를 마음껏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갓 만든 치즈의 부드러움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달콤함이었습니다.
- 클로그 공방: 또 다른 네덜란드의 상징인 나막신(Clog, 더치어로는 Klomp) 공방에서는 통나무가 순식간에 발에 맞는 신발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투박해 보이는 나막신이지만, 네덜란드의 습한 토양과 거친 노동 환경에서는 발을 보호하는 최적의 신발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모네의 눈으로 본 잔세스칸스

잔세스칸스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화가의 마음도 사로잡았습니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1871년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이 잔스트레이크 지역을 방문했고, 이 지역의 독특한 녹색 목조 건축물과 강변의 풍차 풍경에 매료되어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모네의 그림에서처럼, 잔세스칸스의 전통 가옥들은 외부를 짙은 녹색과 흰색으로 칠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독특한 색상과 건축 양식은 주변의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동화 속 같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건물들은 17세기 이후의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목재로 지어졌으며, 당시 부유한 상인과 풍차 주인이 강변에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잔세스칸스는 ‘포토 스팟’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역사, 경제, 예술, 그리고 생활 방식이 모두 담겨 있는 입체적인 공간입니다. 과거의 노력이 만들어낸 현재의 아름다움 속에서, 잠시나마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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