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광장에서 세계의 심장으로: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의 숨겨진 이야기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Samarqand)의 중심에서 만난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은 푸른색과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며, 마치 천일야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레기스탄은 수백 년간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문화, 학문, 그리고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이곳이 현지 우즈베키스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제가 직접 목격한 현대 정치적 중요성까지, 레기스탄 광장의 모든 것을 깊이 파헤쳐 봅니다.
레기스탄 광장: "모래땅" 위에 세워진 세계의 걸작

레기스탄(Registan)이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Reg(모래)'와 'Stan(장소)'가 합쳐진 말로, "모래 광장(Sandy Place)"을 의미합니다. 과거 이곳은 운하 주변의 모래가 쌓여 형성된 공터였고, 티무르 제국 시절에는 왕의 알현식, 공공 집회, 대규모 노천 시장, 심지어 죄인의 처형까지 이루어졌던 도시의 심장부였습니다.
이 평범했던 모래 광장을 인류 건축의 걸작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광장을 둘러싼 세 개의 웅장한 메드레세(Madrasah, 이슬람 고등 교육 기관) 건축물입니다. 이 세 건축물은 약 25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그 규모와 예술적 완성도 덕분에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 (Ulug’bek Madrasasi, 좌측, 1417~1420년)

- 설립자: 티무르 제국의 통치자이자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미르조 울루그벡(Mirzo Ulug’bek)이 건축했습니다.
- 특징: 레기스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건물로, 그의 통치 이념인 과학과 학문을 상징합니다. 이곳에서는 신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수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이 가르쳐졌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 울루그벡은 직접 사마르칸트에 천문대(Observatory)를 짓고 정확한 천문표를 제작할 만큼 열정적인 학자였습니다. 이 메드레세의 미나레트(첨탑)는 지진 등으로 인해 수 세기 동안 조금씩 기울어졌었는데, 소련 시대에 복원 작업으로 바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2. 쉬르도르 메드레세 (Sher-Dor Madrasasi, 우측, 1619~1636년)

- 의미: '쉬르도르'는 "사자(호랑이)가 있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가 지어진 지 200년 후, 야랑투쉬 바하두르(Yalangtush Bahodir)라는 인물이 맞은편에 대칭으로 건축했습니다.
- 특징: 이슬람 건축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형상을 묘사하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이 건물의 정면 아치에는 태양을 등지고 쫓는 사자(실제로는 줄무늬가 있는 호랑이의 모습)와 흰 사슴의 모습이 모자이크 타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 예술의 규율을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로,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이 건축물의 상징성 덕분에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국가 상징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틸라카리 메드레세 (Tilla-Kori Madrasasi, 중앙, 1646~1660년)

- 의미: '틸라카리'는 "금으로 장식된"이라는 뜻입니다. 비비하눔 모스크가 무너진 후, 이곳에 기도 장소와 교육 기관을 겸할 건물이 필요해지면서 가장 마지막에 건축되었습니다.
- 하이라이트: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내부 모스크의 천장입니다. 평면으로 된 천장이지만, 그 위에 덧댄 풍부한 금박 장식과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마치 깊은 돔형 천장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Optical Illusion)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이 화려함 때문에 '금으로 덮인'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방문객들에게 가장 큰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입니다.
현지인에게 레기스탄이 특별한 이유: '역사의 무대'
제가 레기스탄 광장을 방문했을 때,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광장 중앙에 거대한 세트장이 설치되고, 방송 차량과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정치 지도자가 이곳에서 신년사 또는 국정 연설을 녹화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 장면은 레기스탄이 단순히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현대 우즈베키스탄에게도 살아있는 국가적, 정치적 심장임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 권위의 상징: 과거 왕의 알현식, 대규모 포고령 발표, 군대 사열이 이뤄지던 장소입니다. 즉, 국가 권력의 정통성과 국민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던 역사적 무대였습니다.
- 민족적 자긍심: 티무르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들은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에게 강력한 민족적 자긍심을 불어넣습니다. 중요한 국가적 행사(독립 기념일, 축제 등)가 열릴 때마다 이곳이 사용되는 이유도, 과거의 영광을 현재와 연결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려는 의도입니다.
- '세계의 수도'의 유산: 현지인들은 레기스탄을 통해 자신들의 조상인 울루그벡과 티무르가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꿈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레기스탄 광장은 우즈베키스탄인들에게 과거의 학문과 영광을 상징함과 동시에, 현대 국가의 중요한 발표와 행사가 이뤄지는 '현재 진행형의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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