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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역사 여행] 육영수 여사 생가에서 만난 99칸 한옥의 기품과 건물 크기 '뒤주'의 비밀

ohara 2025. 10. 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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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은 시인 정지용의 ‘향수’가 스며있는 고장으로 유명하지만, 이곳에는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육영수 여사의 생가입니다. 조선시대 99칸 전통 한옥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곳을 방문해, 역사 속 인물의 유년 시절을 엿보고, 특히 그곳에서 마주한 독특한 건축물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삼정승이 살던 집터, 99칸 대저택의 위용

옥천 육영수 생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단순한 고택이 아닌 조선시대 상류 계급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규모 저택입니다. 이곳은 과거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다 하여 '삼정승집' 또는 '교동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 공이 1918년 이 집을 사들여 고쳐 지었고, 육 여사는 1925년 이곳에서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할 때까지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 전쟁과 현대화 과정을 거치며 원형이 훼손되었다가, 옥천군에서 대대적인 고증과 복원 사업(2003~2011년)을 통해 현재의 웅장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고 합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중문채, 사당 등 총 1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넓은 대지 위에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은 기와집들을 거닐다 보면, 당시 명문가였던 집안의 규모와 기품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특히 육 여사가 사용했던 방, 부모님의 방 등 내부 전시를 통해 소탈하면서도 정갈했던 육 여사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뒤주': 건물로 세워진 거대한 상징

이 넓은 생가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고, 흥미로웠던 건축물은 바로 '뒤주'였습니다. 보통 뒤주는 안채의 한켠이나 광에 작게 놓여 쌀을 보관하는 용도인데, 이곳의 뒤주는 하나의 독립된 건물처럼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 생가에 이처럼 거대한 뒤주가 설치된 것은, 과거 이 집안이 굉장히 많은 양의 곡식을 저장하고 관리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조선 후기 충청도 명문가의 부와 규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뒤주 안에 쌓였을 곡식의 양만큼, 이 집안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상당했음을 짐작게 합니다.

특히, 뒤주에 얽힌 일화는 육영수 여사의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비록 뒤주 자체가 육 여사 생전의 유물이 아닌 복원된 시설이지만, 육 여사는 생전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인물로 기억됩니다. 이 거대한 뒤주가 상징하는 '풍요로움'은 단순히 집안의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실천했던 육 여사의 인품과 연결되어 생각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거대한 뒤주 앞에서 당시의 넉넉한 인심과 베풂의 문화를 잠시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정취와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

생가 터 뒤편으로는 시원하게 조성된 후원과 아담한 연못(연당)이 있어 고즈넉한 정취를 더합니다. 정자 주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바라보는 전통 한옥의 풍경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됩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누렸던 자연과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육영수 생가에서는 매년 육 여사의 탄신일(11월 29일)과 서거일(8월 15일)에 맞춰 추모 및 숭모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옥천군에서는 생가 주변에 전통문화체험관 등을 조성하며 이 지역을 문화 관광의 거점으로 만들고 있어, 앞으로도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옥천 육영수 생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아름다운 건축 미학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역사 여행지였습니다. '누가 살았던 곳'이 아니라, 한국 전통 문화의 정수시대적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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