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5번가, 센트럴 파크와 마주한 거리를 걷다 보면 시선을 강탈하는 건물이 나타납니다. 다른 모든 건물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을 때, 홀로 부드러운 곡선과 나선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하얀 건축물. 바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입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 작품이어서, '미술관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나러 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것 같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특별함과, 그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위대한 도전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했습니다.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추구했던 인물로, 구겐하임은 그의 건축 철학이 집대성된 최고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이부분은 가우디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이트가 이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무려 15년 동안 700장이 넘는 스케치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미술관을 수집했던 사업가 솔로몬 구겐하임은 "영혼의 성전(a temple of the spirit)"처럼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라이트는 이 아이디어를 나선형 경사로를 통해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뉴욕의 규제 당국과 이웃들은 기존의 직선적인 건축물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그의 디자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심지어 라이트 본인도 건물이 완공되기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선형 갤러리, 예술을 산책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거대한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평범한 직사각형의 방 대신, 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나선형 경사로가 눈앞에 펼쳐지죠. 관람객들은 이 경사로를 따라 마치 예술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천천히 걸어 올라갑니다.
라이트는 미술관의 관람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놓았습니다. 기존 미술관이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각 층을 오르내리며 방을 하나씩 관람하는 방식이었다면, 구겐하임은 하나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마치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예술 작품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미술관 꼭대기 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방식으로 관람했습니다. 라이트가 의도했던 대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걷는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기울어진 벽면과 비스듬한 바닥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또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주는 독특한 경험의 일부였습니다.
천장의 거대한 유리 돔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은 미술관 전체를 은은하게 밝히고, 이 빛은 작품의 색과 질감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라이트는 "자연광이야말로 작품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조명"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구겐하임이 사랑한 예술가들
구겐하임 미술관은 특히 추상 미술의 보고로 유명합니다. 구겐하임 컬렉션의 핵심은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입니다. 구겐하임은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여러 작품을 수집했고, 칸딘스키는 구겐하임이 세운 비객관적 회화 박물관(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칸딘스키의 작품을 시대별로 감상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파블로 피카소, 파울 클레, 마르크 샤갈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항상 흥미로운 특별 전시회가 열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예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어, 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건축'과 '예술'이 완벽하게 하나가 된,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작품입니다. 라이트는 갤러리를 '정지된 방(static room)'으로 보지 않고 '흐르는 공간(flowing space)'으로 설계함으로써, 우리에게 예술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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