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문득 모든 것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주말, 저는 가족들과 함께 충북 영동의 명산 천태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영국사를 찾았습니다.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산세와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곳은,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진정한 휴식을 선사하는 힐링 여행지였습니다.
충북 영동 천태산, 자연이 빚은 절경 속으로

영국사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명상이었습니다. 천태산(715m)은 기암괴석이 빼어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내내 진주폭포, 삼단폭포(용추폭포) 등 자연이 빚어낸 절경이 펼쳐집니다. 푸르른 녹음과 청아한 물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씻어내고, 맑은 공기는 폐 속 깊은 곳까지 상쾌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천태산은 A코스(암릉)와 D코스(일반 등산로)가 있어, 짜릿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들뿐만 아니라 저희처럼 가족 단위로 가볍게 산사의 정취를 느끼려는 이들에게도 완벽한 장소입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계곡을 따라 오르자, 깊은 산속 넓은 대지에 영국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국사 주변은 양산팔경에 속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합니다. 원래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였으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 후 나라가 평안해지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의 '영국사(寧國寺)'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천 년을 이어온 이름처럼, 절 전체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도 평온한 기운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이름을 보고 영국? 영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서 빌어본 소원

영국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거대한 은행나무입니다. 무려 10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며, 높이가 30m를 훌쩍 넘는 이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를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국가에 재난이 있을 때 울음소리를 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이 나무는,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소원을 품고 서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은행나무 아래 마련된 공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거대한 나무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며 각자의 소원을 마음속으로 되새겼습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묵묵히 지켜봐 준 이 나무 덕분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희망과 평안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저는 이렇게 고요히 소원을 빌고 마음을 정화하는 순간이 가장 귀하게 느껴집니다.
산사에서의 다도(茶道), 약과와 전통차의 조화
영국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누린 후, 절의 한켠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전통차와 약과를 나누는 시간이 이번 여행의 백미였습니다. 맑은 계곡물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흐르는 산사에서 마시는 따뜻한 전통차는 그야말로 '멈춤의 미학'이었습니다.
정갈하게 덖어진 찻잎에서 우러나온 은은하고 깊은 향은 심신을 안정시켰고, 약과의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은 차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요즘 흔히 접하는 카페 음료 대신, 자연의 품속에서 전통의 맛을 느껴보는 이 시간 자체가 소중한 가족과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스마트폰 대신 차분하게 차를 음미하며 고요함을 즐기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영국사의 보물들, 역사를 만나다
영국사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유적들을 품고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 왕사를 지낸 원각국사 덕소가 중건하며 번영했던 곳으로, 경내에는 보물 제533호 영국사 삼층석탑, 보물 제534호 원각국사비, 그리고 멀리 망탑봉에 자리한 보물 제535호 망탑봉 삼층석탑 등 귀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습니다. 이 유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사찰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만세루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올려다본 천태산의 암릉과 어우러진 모습은 장엄함 그 자체였습니다.
힐링과 역사 교육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동 영국사 여행은 저희 가족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잠시나마 속세를 벗어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주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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