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문득 나무 꼭대기에 둥지처럼 엉겨 붙어 있는 초록빛 덩어리들을 봤습니다. 처음엔 새들이 만든 까치집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겨우살이였습니다. 책과 강의에서만 보던 그 식물을 실제로 만나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식물병리학책에서 “최초의 병원균”으로 언급되던 바로 그 겨우살이를,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겨우살이가 미국엔 왜이렇게 흔한걸까요? 전설의 식물처럼 풍문으로만 듣던 겨우살이를 직접 본 김에 겨우살이에 대해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겨우살이는 어떤 식물일까?
겨우살이는 상록성 반기생식물입니다. 스스로도 광합성을 하지만, 나무에 붙어 수분과 무기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갑니다. 가지 속으로 침입하는 ‘흡기(haustoria)’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숙주 나무에 의존하면서도, 늘 푸른 잎을 유지하죠. 그래서 겨울철 낙엽이 진 나무 위에서도 초록빛 덩어리로 뚜렷하게 보입니다. 미국에도 여러 속(genus)의 겨우살이가 분포하며, 고속도로 옆 큰 활엽수나 침엽수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식물병리학 역사 속 겨우살이
겨우살이는 과학적으로 인식된 최초의 식물 병원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의 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가 13세기경 이미 그 기생성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숙주의 생육을 저해하고 가지를 마르게 하는 반기생식물로 연구되며, 식물병리학 역사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겨우살이와 다산의 상징
유럽에서는 겨우살이를 예로부터 신성한 식물로 여겼습니다. 켈트족의 드루이드 사제들은 ‘황금 낫’으로 떼어내는 ‘참나무와 겨우살이 의식(Ritual of Oak and Mistletoe)’을 행하며 불임 치료나 해독의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겨우살이의 흰 열매를 “참나무의 정자”라고 부르며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숭배했습니다. 로마인들도 집안의 평화와 사랑을 위해 문 위에 걸어두었죠. 추운 겨울 참나무는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데, 겨우살이가 붙은 몇몇 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잎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도 신기하고 신비로운 마음에 신성하고, 축복받은 나무로 여겨졌던것 같습니다.
북유럽 신화와 ‘키스 전통’의 시작
북유럽 신화에서는 겨우살이가 신 ‘발드르’를 죽이는 무기로 등장합니다. 사랑과 빛의 신 발드르는 겨우살이 화살에 맞아 죽게 되는데 그 어머니 프리그가 발드르를 부활시키고 "겨우살이는 더이상 무기를 만들지말고 사랑과 평화를 가져오는 식물이 되라"며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선언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겨우살이 아래에서 화해를 사랑의 입맞춤을 나누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전통이 16세기 영국에서 ‘겨우살이 아래 키스하기’라는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문화로 정착했고, 워싱턴 어빙의 글을 통해 미국까지 퍼졌습니다. 남자가 여자와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면 행운이 따른다는 믿음이 있었고, 여자가 이를 거부하면 불운이 따른다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겨우살이의 생태적 역할
겨우살이는 숙주 나무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중요한 생태계의 키스톤 종이기도 합니다. 겨울철에도 빨갛거나 흰 열매를 맺어 철새와 겨울새의 먹이가 되며, 겨우살이가 많은 숲일수록 조류 다양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기생과 공생의 경계를 오가는 독특한 식물인 셈이죠. 최근에는 항암효과와 면연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어 새로운 항암치료제의 개발에 큰 의미가 있는 식물이 될 것 같습니다.
책 속 사진과 강의 슬라이드에서만 보던 겨우살이를, 그것도 고속도로 옆 거대한 나무에서 둥지처럼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본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병원균이자 신성한 식물, 숙주를 약하게 하지만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존재—겨우살이는 과학과 신화를 동시에 품은 매혹적인 식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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