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9월 11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평범한 가을의 시작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의 날입니다. 문득 올 초 뉴욕 여행에서 방문했던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그곳의 기억을 더듬어보려 합니다.

뉴욕 맨해튼의 금융 중심지,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그곳은 과거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가 우뚝 서 있던 자리입니다. 911 테러의 흔적은 이제 거대한 기념관과 박물관으로 남아, 그날의 비극과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메모리얼 파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크기의 두 개의 인공 폭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파운드(Found)'라고 불리는 이 폭포는 과거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정확히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멈추지 않는 눈물처럼 보였고, 폭포의 가장자리에는 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름 위에는 가끔 작은 꽃이나 국기가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와 추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Reflecting Absence(부재를 반영하다)'라는 이름의 이 폭포에는 911 테러 희생자뿐만 아니라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테러로 인해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방식이었습니다. 이름이 무작위로 새겨진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관계에 따라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함께 있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삶과 관계를 존중하고 기억하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메모리얼 파크를 지나 뮤지엄으로 향했습니다. 뮤지엄은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테러가 발생했던 그날,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뮤지엄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거대한 철골 구조물은 세계무역센터의 잔해였습니다. 불에 탄 철골은 그날의 처참했던 상황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뮤지엄은 크게 세 가지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간은 그날의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한 '역사 전시관(Historical Exhibition)'이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뉴스 영상과 테러 희생자들의 유품,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마지막 음성 메시지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한 여성 희생자가 남긴 "사랑해"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저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공간은 '기념 전시관(Memorial Exhibition)'으로, 희생자 2,977명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그들의 짧은 생애가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형 전시관(Interactive Exhibition)'에서는 911 테러 이후의 이야기와 테러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의 용기와 헌신, 그리고 테러 이후의 뉴욕 시민들의 회복 과정은 저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뮤지엄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모든 전시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날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희생자들의 유품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마지막 흔적을 통해 비극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뮤지엄을 나와 다시 메모리얼 파크를 걸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폭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장면은 911 테러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뉴욕을 여행하며 수많은 명소를 방문했지만,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은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테러의 흔적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희생과 용기, 그리고 서로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공동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테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잊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은 바로 그런 노력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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