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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플로리다 키웨스트로 떠나는 여행

ohara 2025. 9. 2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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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남단, 바다 위를 달리는 꿈의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

플로리다의 푸른 바다 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달리면, 그 길의 끝에는 낭만과 자유의 섬, 키웨스트(Key West)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키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섬들 중 가장 마지막 섬이자, 동시에 가장 유명한 섬인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과 여유로운 분위기만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이 섬에는 미국 역사와 인간의 도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플로리다 키스는 왜 '키스(Keys)'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플로리다 반도 남쪽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섬들은 에스파냐어로 ‘작은 섬들’을 의미하는 ‘카요스(Cayos)’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초기 에스파냐 탐험가들이 이곳의 지형을 보고 ‘카요스’라 불렀고, 이 단어가 영어식으로 변형되면서 지금의 ‘키스(Keys)’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섬들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은 ‘서쪽의 작은 섬’이라는 의미로 ‘카요 후에소(Cayo Hueso)’라 불렸는데, 이 또한 영어로 발음되면서 ‘키 웨스트(Key West)’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이름 하나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 바로 키웨스트입니다.

 

바다 위를 달리는 위대한 꿈, 오버시즈 하이웨이

키웨스트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었습니다. 마이애미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길은 ‘오버시즈 하이웨이(Overseas Highway)’라고 불리며, 총 42개의 다리로 플로리다 키스 섬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다리는 단연 ‘세븐마일 브릿지(Seven Mile Bridge)’입니다. 11km가 넘는 이 다리를 건너다 보면, 마치 바다 위를 나는 듯한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섬들을 이어주는 통로를 넘어, 20세기 초 인간의 위대한 도전 정신이 깃든 산물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의 위대한 도전, 그리고 헨리 플래글러의 꿈

이 도로의 기반이 된 것은 바로 '오버시즈 철도(Overseas Railroad)'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업가이자 플로리다 개발의 선구자인 헨리 플래글러(Henry Flagler)는 플로리다 동부 해안을 따라 철도망을 구축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 본토와 키웨스트를 연결하여, 이곳을 쿠바와의 무역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키웨스트는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발전이 더딘 상태였지만, 플래글러는 기술의 힘으로 이 한계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1905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바다 위에 철도를 놓는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쉬운일은 아니겠죠. 수많은 기술적 문제와 함께, 허리케인의 위협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1906년에 닥친 대형 허리케인은 철도 공사 현장을 휩쓸었고,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플래글러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912년에 오버시즈 철도가 개통되면서 키웨스트는 미국 본토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업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때, 바다 건너 동쪽 한반도에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가 시작되고 있을 때이니 말입니다. 미국의 철도 기술이 바다를 건너는 위대한 도전을 할 때, 우리나라는 기술은 물론이고 국가의 주권마저 빼앗긴 채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대, 한 나라는 기술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지만, 다른 나라는 기술과 문명의 발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단면을 비교해 보니, 키웨스트의 철도 다리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건축물을 넘어, 한 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한 역사의 증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흔적으로 남은, 옛 철도 다리의 비밀

하지만 이 위대한 철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35년에 닥친 '노동절 허리케인(Labor Day Hurricane)'은 오버시즈 철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당시 허리케인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철도 선로와 다리의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이 사고 이후, 철도를 복구하는 대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옛 철도 다리옆으로 지금의 오버시즈 하이웨이가 건설되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가다 보면 옛날 철도다리가 보입니다. 100여년전에 바다위에 만들어진 다리를 실제로 마주하니 다시한번 동시대에 두 나라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날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다시한번 실감이 났습니다. 이곳에서 깊은 바다위에 몇십키로미터의 다리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고, 잠수함을 만들때 우리나라에서는 가마를 타고다녔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또한 그렇게 큰 격차가 있던 두 나라가 지금은 기술적인면에서는 큰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감과 뿌듯함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낸 부모님들 세대에게 존경심이 솓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왜 쓰지 않는 옛 철도 다리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까요? 첫째, 철거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다리를 바다 한가운데에서 철거하는 것은 건설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렵게 지은 철도다리가 허리케인에 의해 파괴된 후 오버시즈 철도회사는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플로리다 정부에 다리를 팔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부분도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끊어진 다리를 플로리다는 왜 샀을까요? 여하튼, 플로리다 정부는 끊어진 다리를 철거하는 대신 새로운 다리를 다시 건설해 지금의 고속도로가 완성되었습니다. 둘째, 철거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때문 이라고 합니다. 셋째, 역사적 가치와 관광 자원으로서의 활용 가능성 때문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옛 철도 다리들은 낚시터나 산책로로 활용되면서, 키웨스트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다리들은 키웨스트가 지나온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며,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살아있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키웨스트, 그 자유와 낭만의 도시

 

 

오버시즈 하이웨이의 끝에 다다르니, 키웨스트의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유명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옛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길렀던 고양이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해 질 녘, 듀발 스트리트(Duval Street)를 거닐며 다양한 상점과 갤러리를 구경하고, 말로리 스퀘어(Mallory Square)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석양이 질 때 바다가 붉게 물드는 풍경은 키웨스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섬은 인간의 도전, 자연의 힘, 그리고 역사의 흔적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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