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새로운 햄버거 브랜드로 친구와 종종 갔던 웬디스(Wendy’s). 어쩐지 어린 시절의 햄버거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인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미국 여행 중 거리 곳곳에서 ‘Wendy’s’ 간판을 마주친 순간, 마치 오랜 친구를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것 같은 기묘한 반가움이 밀려왔습니다.
처음 마주한 웬디스 매장은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포장된 버거를 벗겨내자 네모난 패디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자 ‘아 — 이 맛이었지’ 하는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래 잊고 있던 감성이 순식간에 되돌아오는 느낌. 한국에서 사라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한 향수 이상의 배경이 있었습니다.
사실 웬디스는 1984년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1998년에 모든 매장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해외 진출을 확대하던 웬디스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데에는 경쟁 심화와 1997~1998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맥도날드·버거킹 등 강력한 글로벌 체인과 지역 프랜차이즈들의 경쟁 속에서 자리잡기 쉽지 않았을 테지요.
미국에서 다시 접한 웬디스는 브랜드 고유의 메뉴(네모난 패티, 신선한 토마토, 구운 빵)가 주는 정체성이 아직 남아 있었고, 그 맛은 ‘어렸을 때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동시에 왜 한국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길들여졌기 때문일까요? 요즘은 파이브가이즈같은 브랜드도 한국에 들어오는걸 보면 한국인들도 꽤나 기름진 햄버거에 익숙해 진것 같습니다. 그에비하면 웬디스는 좀 담백하다고나 할까요?
흥미로운 점은, 웬디스의 한국 철수 이후에도 그 자리에는 비슷한 콘셉트의 브랜드들이 들어서며 소비자의 선택 폭이 바뀌었다는 다고 합니다. 즉 단순히 ‘브랜드가 사라졌다’가 아니라 ‘시장 구조와 소비자 기대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다시 맛본 웬디스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 외국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동시에 그 친구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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