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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바다 위에 떠오른 시간의 성

ohara 2025. 9. 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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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중 가장 기다리던 순간, 드디어 눈앞에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이 나타났습니다. 바다 위에서 마치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듯한 섬, 신비로운 성곽 도시의 실루엣은 그림 속 환상이 현실로 내려온 듯했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갯벌 위로 그 웅장한 모습이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눈에 담았습니다.

바다와 하늘 사이, 드라마 같은 풍경

몽생미셸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성의 외관이 아니다. 이곳은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무대 같습니다. 밀물이 차오르면 섬은 온전히 바다 위에 고립되고, 썰물 때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납니다. 그 변화무쌍한 풍경 속에서 몽생미셸은 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소금기 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갯벌 위를 스쳐가는 구름 그림자는 성벽 위로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 장면은 어느 화가도, 어느 사진가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성곽 도시를 오르는 발걸음

섬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졌습다. 오래된 석조 건물 사이로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늘어서 있었지만, 상업적인 느낌보다는 ‘중세의 장터’ 같은 분위기가 강했습다. 돌로 쌓인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며 시선을 옮길 때마다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계단은 조금 가파르고, 숨이 차오를 때마다 계단 한쪽에서 잠시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작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늘을 찾아 큰 나무아래 계단에 서있었는데,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내 배낭 어깨끈에 똥을 남기고 간 것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놀라고 불쾌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완벽한 여행이 주는 만족감도 좋지만, 이런 뜻밖의 에피소드가야말로 두고두고 웃으며 떠올릴 추억이 되는것 같습니다.

홍합 요리와 바다의 맛

몽생미셸에 오면 꼭 맛보아야 할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홍합 요리( Moules de Bouchot )입니다. 성 안에 자리한 홍합요리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갓 조리한 홍합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따끈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와인 향이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입안에 넣는 순간, 바다의 신선한 향이 터져 나왔습니다. 크림 소스가 부드럽게 감싸고, 향긋한 허브가 뒷맛을 잡아주었습니다. 그 옆에 곁들여진 바삭한 빵을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은 여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홍합을 먹으며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맛과 풍경, 시간까지 모두가 완벽하게 어우러졌습다.

Moules de Bouchot 사진

 

수도원의 장엄한 고요

마침내 정상에 이르러 수도원에 들어섰을 때, 바깥의 활기와는 전혀 다른 고요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높은 아치형 천장과 차가운 돌기둥이 이어지는 긴 복도,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줄기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말소리가 아닌, 숨소리조차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늦췄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몽생미셸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순례자들이 걸어온 믿음의 길이자, 인간의 손과 자연의 조화가 빚어낸 위대한 산물이었습니다.

잊히지 않을 추억

돌아오는 길에 배낭 끈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새로산 가방이라 처음엔 좀 짜증이 났었지만 누군가 내게 몽생미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다면 아마 이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엄한 성, 맛있는 홍합 요리, 그리고 비둘기 사건까지. 여행은 결국 이렇게 다양한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몽생미셸은 내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기억 속의 성으로 남았습니다. 바다 위에 고요히 떠 있는 그 모습처럼, 나의 기억 속에서도 이곳은 늘 빛나며 서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갯벌 위를 직접 걸으며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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